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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청년 세대·'빈털터리' 노년… 모두가 피해자 ['세대 갈등'에 멍드는 한국 - 신년특집]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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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사회 변화가 낳은 '대립 구조' / 노후를 잃어버린 노인들 / 산업화 이끌었지만 권위 모두 상실 / 자녀 뒷바라지만… 부양은 기대 못해 / 소외감 해결 안되면 도피 계속할 것 / 무한 경쟁 내몰린 청년들 / 내집은 꿈도 못 꾸고 월세방만 전전 / 결혼·출산·육아 포기한 채 생존 급급 / 기성세대 ‘소통의 창구’ 만들어내야
‘격동의 반세기’를 겪은 대한민국은 각 세대가 경험한 사회·정치적 차이가 매우 크다. 1950년 6·25전쟁을 겪은 세대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그리고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시위에 참가한 청년은 저마다 정치성향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7∼8%에 달했던 ‘한강의 기적’ 세대와 저성장 시대 취업난에 허덕이는 오늘날 청년 세대도 다르다. 앞선 세대에 한국은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하지만 지금 청년에게는 무한 경쟁에 내몰린 채 취업·주거 문제로 시름하는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이 됐다.

너무나 다른 세대가 더 이상 함께 모여 살지도 않는다. 노인과 청년 세대 모두 ‘1인 가구’가 폭증하고 있다. 세대 간 소통 창구가 꽉 막혀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급속히 진행된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복지, 일자리 등 사회 자원의 배분을 놓고 세대 간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고령화에 대한 인식만 높아졌을 뿐 세대 간 통합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빈털터리’가 된 첫 노인 세대

현 노인 세대는 사회적·경제적으로 ‘빈털터리 노년’을 맞은 첫 세대다. 한국 역사상 이런 노인 세대가 등장한 건 처음이다. 산업화 이전까지만 해도 노인은 농경사회의 주축이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31일 “절기에 따른 농사에선 파종 시기, 파종 방법과 수확 등 경험을 통해 획득한 지식이 가장 중요했다”며 “노인은 농사 경험이 많은 사람이고 젊은 사람이 알 수 없는 축적된 지식을 갖고 있어 자연스럽게 주위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짧은 시기에 산업화를 거쳐 정보화·디지털 사회로 변화하면서 오늘날 노인은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구세대로 전락했다. 신 교수는 “나이가 많은 것이 더 이상 권위나 위엄의 근거가 되지 못하는 사회임에도 노인들은 어린 시기에 형성된 옛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한국 사회의 급격한 사회 변동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근대화·산업화에 동참했지만 정작 자신은 노후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자녀 뒷바라지만 하다 노인이 됐다. 한창 경제활동을 하던 시기에 연금 등 사회보장 제도도 없었다. 한국 노인의 절대 빈곤율은 33.1%(2016년 기준)로 노인 3명 중 1명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본인은 부모 봉양을 도리로 알고 살았지만 자손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 윗세대 노인이 가졌던 경제적 지위와 권위, 자녀의 봉양 등 모든 걸 잃어버린 ‘버려진 세대’라는 것이다.

일부 노인이 ‘태극기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이러한 소외감이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종숙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은 ‘촛불, 태극기, 그리고 5070세대 공감’ 보고서에서 “장·노년층이 겪고 있는 소외감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들은 계속해서 과거의 향수 속으로 도피할 것이고 비상식의 동원에도 쉽게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88만원 세대’… 무한 경쟁에 내몰린 채 패배

청년 세대의 현실을 드러내며 한때 유행했던 말이 ‘88만원 세대’다. 20대 비정규직 월급 평균이 88만원이라는 것이다. 이에 기성세대는 “소득은 생애주기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청년의 어려움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많은 청년 앞에는 여전히 ‘비정규직의 굴레’와 ‘불안한 미래’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주거 문제만 해도 기성세대는 성실하게 일하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었으나 2000년대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청년의 임금 소득으로는 불가능한 꿈이 됐다.

이재경 한신대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원은 “한국 청년들은 이제 ‘집’이 아니라 ‘방’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그나마 월세 방조차 얻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고시원으로 대표되는 좁고 열악한 공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청년이 윗세대가 삶의 당연한 순리로 여긴 결혼과 출산, 육아도 포기한 채 나름의 생존법을 찾고 있다.

한국은 고도 성장기를 지나 저성장이 고착된 사회다. 어린 시절부터 무한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이 노력한 만큼 보상을 얻기 어려운 사회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명문대 진학 등 획일적 경쟁에 이들을 내몰며 수많은 ‘패자’를 양산하고 있다. 절대적 빈곤에서는 벗어났지만 오늘날 청년이 겪는 삶의 조건도 녹록지 않다.

◆각 세대 모두 사회변화의 피해자

결국 노인과 청년 모두 급격한 사회 변화의 피해자인 셈이다. 가만히 둬도 이질적 경험과 단절된 관계로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표를 얻거나 정책 변화를 위해 세대론을 동원하며 세대 간 갈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회 자원을 놓고 청년과 노인이 대립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은 “미래 세대 세금 폭탄”, “세대 간 도적질” 등 표현을 써가며 그때그때 국민 설득에 나섰다. 그 결과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연금 개편안은 ‘국민연금 폐지’가 돼 버렸다.

세대 간 연대가 필요한 사회보장 제도가 극심한 불신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노인들은 자신을 위한 복지에는 찬성하면서 다른 계층의 복지에는 반대한다”며 “노인 전철 무임승차를 폐지해 달라”는 청원 글이 올라오기까지 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 복지 확대를 하려면 세대 간 이해를 도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는 윗세대가 어렵게 구축해놓은 사회 인프라의 혜택을 받으며 자라난 만큼 부담이 좀 늘어난다고 해서 일방적 손해를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대결적 분위기에서 상호 이해를 위한 장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신 교수는 “세대 갈등을 유발하는 정치는 한국 사회를 망치는 길”이라며 “선거에서나 일상 정치에서 세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언행과 부추기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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