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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아침 편지] 호국 용사 시아버님께 드리는 현충일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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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편지] 호국 용사 시아버님께 드리는 현충일 편지

이순필 경기 성남시

입력 2016.06.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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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필 경기 성남시

 

그리운 아버님! 천상(天上)은 어떠하세요? 조국은 이제 모두 산으로 바다로 나들이를 떠나는

 신록의 계절이랍니다. 그리고 순국하신 모든 분의 영전에서 호국(護國)과 현충(顯忠)의 정신을 기리는 달이기도 하고요.

 

제 나이 스물두 살 때의 사월 봄날, 우리는 일가친척 축복을 받으며 혼인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전에 중매쟁이로부터 "신랑은 삼대독자이며,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시부모는 모두 돌아가셨고, 형제자매 없는 단출한 집안이어서 시집살이도 없을 아주 편한 혼처"라고 들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제 고향 면사무소에 근무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요. 남편은 아버지를 나라에 바치고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신 후 적막한 가정에서 조손(祖孫) 가정으로 힘겹게 살아온 6·25 전몰군경 유자녀였습니다. 시집온 후 할머니로부터 아버님의 무용담(武勇談)과 가문(家門)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결혼하고 딸들이 성장하면서 아버님 제사상과 차례상을 마련하며 느껴온 그리움은 컸습니다. 영정 앞에서 절 올리는 남편을 볼 때마다 아버님의 명복을 눈물로 기원했습니다. 명절 때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는 어디 계시냐"고 어린 딸들이 물을 때, 저의 아팠던 가슴을 아시는지요. 저도 남들처럼 한복 곱게 차려입고 두 분께 세배 드리고, 세뱃돈도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당신(유귀룡 경위·전사 당시 27세)은 6·25전쟁 한 해 전인 1949년 3월 경주경찰서 안강지서장으로 근무하시다가 경찰 전사(戰史)에 빛나는 안강 두류리 전투에서 빨치산과 교전 중 동료들과 산화하고, 이제 서울 현충원에 조국의 꽃으로 피어 계십니다. 효심이 지극하셔서 생전에 할머님께 그토록 잘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당신이 바로 구국의 영웅이요, 보기 드문 효자였으며, 잠시지만 함께 한 어머님과의 금실도 그토록 좋으셨다니 더더욱 그립습니다.

아버님! 북한은 6·25 발발 66년이나 되는 지금도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면서 대한민국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사수한 조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되었으며, 우리 국민은 그들의 협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풍요로운 나라가 아버님과 호국영령들이 지켜주신 덕이라 생각하니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버님의 이름으로 지난 21년간 강원도 양양에서 경기도 파주 임진각까지 38선을 따라 86번이나 자동차를 몰고, 혹은 두 발로 달리면서 조국의 평화를 기원해왔습니다. 지난 2000년에는 남편이 혼자 뉴욕~샌프란시스코~LA에 이르는 북미 대륙 4000㎞를 자동차로 달리며 세계에 한반도의 평화와 가정의 소중함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경사스러운 집안 이야기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작년 가을에 막내딸 혼사가 있었습니다. 그날 남편이 양가를 대표해 축사했는데 참 기쁜 자리인데도 저는 먼저 떠나신 아버님과 어머님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다행히 딸 넷이 다 건강하게 자랐고, 다들 자주 만나며 정다운 시간을 갖고 있으니 마음 편하게 계시길 바랍니다.

아버님. 해마다 유월이면 단 한 번도 뵙지 못한 당신 모습을 유난히 자주 그리게 됩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 함께 하는 날이 오겠지요. 그날 곱게 한복 차려입고 두 분 생전에 드리지 못한 큰절을 올리고 싶습니다. 천상에서 부디 편히 쉬세요. 며느리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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